86 에이티식스 13권 후기
- 문화/라이트 노벨
- 2024. 6. 19. 11:04
지난 2024년 1월을 맞아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12권>을 읽은 이후 약 5개월 만에 <86 에이티식스 13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86 에이티식스 13권>의 표지를 본다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들은 신 일행과 마찬가지로 모두 공화국에서 86구로 내몰렸던 에이티식스들이었다.
하지만 그와 그녀들은 평범한 에이티식스가 아니라 과거 공화국의 하얀 돼지들에게 무자비한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들이었다. 그 실험은… 진짜 책을 읽으면서도 너무나도 끔찍했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거 제2차 세계 대전 때 분명히 일본이 자랑했던 가미카제 특공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쫙 돋았다.
그 실험은 '아기 사슴'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실험으로, 공화국의 백계종들이 86구의 에이티식스들이 레기온과 싸움이 끝난 이후 자신들에게 총구를 들이댈 것을 대비한 실험이었다. 그들은 사람이라면 방심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몸에 '폭약 생성 세포'를 심어서 특정한 순간에 스스로 자폭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지난 <86 에이티식스 11권>에서는 에이티식스들을 이용한 도청기가 논란이 되었는데, 백계종들은 재차 에이티식스들을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그저 쓰고 버리는 말로 취급했다는 것이 다시금 공개되었다.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그 사실을 연방에서 알게 되고, 그 사실이 연방 내부에서 보도되자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과거 에이티식스들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한 차례 커다란 비판을 받았던 공화국의 백계종들은 당연히 거센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연방과 협력해 레기온을 상대하는 군 내부에서도 언제 자주 지뢰처럼 폭발할지도 모르는 에이티식스 출신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무엇보다 그 공화국 녀석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싸워야 하는 것에 분노했다.
전쟁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내부 분열이지만, 공화국 백계종 놈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연방과 연합군 내부에서 내부 분열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13권>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반부는 너무나 어둡게 내려앉은 분위기의 이야기라고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이상 증세를 느낀 치토리와 몇 아이들은 스스로 진영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일부 에이티식스 아이들은 자신들을 사지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끔찍한 실험까지 자행한 공화국 백계종들이 있는 곳에서 자폭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에이티식스를 매개체로 한 레기온도 계속해서 공화국 시민 밀도가 높은 곳을 공격했다.
그렇다 보니 연방과 연합군 내부에서는 기동 타격대로 에이티식스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어도 알게 모르게 악의와 불만이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에이티식스 소년병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부터 시작해서 다색 인종으로 구성된 연방은 '우리'라는 수식어로 통괄할 수 있는 집단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86구를, 에이티식스를 만들어낸 공화국만이, 딱히 이상한 게 아니었다. 정상이락 생각했던 연방조차도 상황이 바뀌면 마찬가지였다.
공화국만이 아니다. 인간은, 그 사회는 뭔가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간단히, 완전히 똑같은 멸시와 배척으로 돌진한다. 자기나 동포에 대한 불이익과 죽음은 허용하고 싶지 않은 나머지,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을 일종의 정의로 삼는다. (본문 172)
그리고 아주 우둔하게도 프림벨을 비롯한 백계종― 표백제로 불리는 인물들은 연방이 자신들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반란을 일으켜 연방의 대통령 에른스트를 인질로 잡기도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본능이라고 말하지만, 공화국 녀석들의 오만함과 이기적인 모습들 이미 경계선을 심하게 넘고 있었다.
그들을 구출한 이후부터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은 단순히 공화국 피난민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찰이 아니라 연방과 전선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보다 컸다. 다행히 신과 레나를 비롯해 더스틴과 앙쥬 같은 인물들은 죄책감과 분노에 괴로워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게 진짜 사람이다.
<86 에이티식스 13권>에서 신과 그 팀의 활약으로 반란을 일으킨 공화국 출신인 장교와 수하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계속해서 전진을 해오던 레기온도 어느 정도 막아내는 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화국 녀석들이 남긴 그 폭탄은 기어코 마지막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면서 이 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연방 본토에서 전장이 분리됩니다. 서부전선이…… 연방의 모든 전선이 86구가 됩니다!" (본문 365)
책을 읽는 내내 '전쟁'과 '다툼'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잔혹하게 만들고, 비탄하게 만드는지 느낄 수 있었던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13권>은 그렇게 새로운 사건이 발발하면서 끝을 맺었다. 그것도 레기온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공화국 녀석들이 남긴 아기 사슴 프로젝트로 말미암은 어떤 사건이 기어코 분열을 일으키고 말았다.
과연 다음 <86 에이티식스 14권>에서는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까? 앞에는 레기온이 막고, 뒤로는 인간의 악의가 막는 전선 속에 고립된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그 이야기는 추후 발매될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14권>을 읽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자. 정말, 전쟁을 말하는 인간들은 있어서는 안 될 인간들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