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경계(상),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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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노벨 감상 후기] 공의 경계(上), 부감풍경―살인고찰(前)―통각잔류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고 인정하는 몇 가지 작품이 있다. 그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공의 경계'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의 경계'는 '진월담 월희'라는 게임이자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작품으로, '타입문'을 좋아하는 '달빠'라는 팬을 양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작품이다. (아마도. 그렇게 들었다. 아무튼, 대단한 작품인 건 확실하다.)


 '공의 경계'라는 이 작품은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에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정말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전에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도 소설을 사서 읽어보아야겠다.'라고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공의 경계'라는 작품이 꽤 두껍게 '상, 하'로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책을 사는 데에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6년 만에 '공의 경계 개정판'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번에 다른 라이트 노벨과 함께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개정판 이전에 나온 공의 경계는 '상, 하' 두 편으로 나뉘어있었지만, 이번 개정판 공의 경계는 '상, 중, 하'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어 책을 읽는 데에 더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공의 경계(上)'을 먼저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공의 경계(上), ⓒ미우


 《공의 경계(上)》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부감 풍경, 살인고찰(前), 통각 잔류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책을 읽는 동안 할 수 있는 그 생각에 매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매료라고 말하니 뭔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조금 고민이 되지만, 책을 읽는 동안 한 번에 집중해서 계속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책이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말이기에 사용하도록 하겠다. 단순히 화려한 액션만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여러 고찰을 하는 내용임에도 '어려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는 건 이 작품이 가진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읽을 수 있었던 『부감 풍경』의 이야기는 한 빌딩에서 연쇄 자살이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을 일으킨 건 병으로 괴롭게 사는 후조 키리에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하늘을 보고 싶다…는 그런 마음에서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인데, 그건 자신이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죽음을 문앞에 두고 '하늘'이라는 끝없어 보이는 곳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내게 손이 미치지 않는 것에 동경심을 품는 건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 그리고 과거부터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불편한 기억의 조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짜 맞춰질 때마다 그저 책상에 앉아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하늘의 어딘가에서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허망한 생각으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아마 한 번쯤은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부감 풍경』의 이야기는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에는 날지 못한 그런 죽음을 맞이해버리고 말았지만, 그녀와 시키와 코쿠토에게 있었던 작은 일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너는 어째서 하늘을 동경했지? 바깥 세계는 증오하면서."

그것은, 아마――.

"하늘은 끝이 업으니까. 어디까지고 가면, 어디까지고 날아가면 내가 싫어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것은 발견했니? 하고 소리가 묻는다.

나의 오한은 멈추지 않는다. 몸은 누군가가 흔들기라도 하듯 떨리고, 눈두덩은 한층 뜨거워졌다.

나는 끄덕였다.

"――매일 밤, 아침이 왔을 때 눈을 뜰 수 있을지 두려웠어. 내일은 살아 있을까, 겁이 났어. 잠이 들면 이제 일어날 체력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물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나의 하루하루는 죽음에 대한 공포밖에 없었어.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실감을 할 수 있엇어. 나의 허무한 날들은 죽음의 냄새밖에 없었어.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죽음의 향기만이 의지였어. ……평소의 나는 이미 껍데기뿐이니까. 죽음과 직면한 순간밖에 살아 있다는 실감을 할 수가 없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삶보다 죽음에 더 이끌리고 있다. _공의 경계(상), p66


"자살에는 이유는 없어. 오늘은 날지 못했을 뿐일 거야." _공의 경계(상), p76


 두 번째 이야기는 『살인고찰(前)』 편으로 여기서는 료우기 시키와 코쿠토 미키야의 만남, 그리고 시키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시키라는 인물이 왜 이중인격이었는지,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무슨 이유인지, 그리고 하나와 또 다른 하나의 인격이 맞물리는 톱니바퀴 같은 이야기였다. 두 명의 시키와 코쿠토, 그리고 연쇄 살인사건. 『살인고찰(前)』의 이야기는 나중에 『살인고찰(後)』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가 인간을 싫어한다는 이야기, 했던가?"

이날, 무심한 듯한 분위기로 시키(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시초문인데. ……그러냐?"

"응. 시키(式)는 인간을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어릴 때 말이야, 보통 아무것도 모르잖아. 만나는 사람 전부, 세상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잖아. 자기가 좋아하니까 상대도 당연히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상식이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릴 때의 의심 같은 걸 하지 않았지. 확실히 무조건적으로 모두를 좋아했고,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때는 귀신을 제일 무서워했었지. 지금은 사람이 무서운데."

정말,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키(織).

"하지만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무지한 것은 필요해, 코쿠토. 어릴때는 자기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타인의 어떤 악의도 깨닫지 못하잖아. 설령 자신이 잘못을 하더라도 사랑받았던 느낌이 경험이 되어 다른 사라에게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거야.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밖에 표현하지 못하니까.

저녁노을의 붉은 빛이 시키의 옆얼굴을 물들인다.

이때, 그녀가 어느 쪽의 시키인지 나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이 아이는 료기 시키니까.

"그러나 나는 달라. 태어날 때부터 타인을 알고 있었어. 시키(式)는 자기 안에 시키(織)가 있으니까, 타인이란 걸 알게 된 거야. 자기 이외의 인간이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거지. 어릴 때 타인이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 시키는 그들을 사랑할 수가 없었어. 언젠가부터 관심도 갖지 않게 되었어. 시키가 가진 감정은 거부뿐이야."


――그래서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 _공의 경계(상), p116


 이 부분은 내가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나는 이중인격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 말 그대로 추악한 존재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건 그 일이 있었던 후 나는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일까.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비정상적으로 많은 혼잣말하고는 한다. 누군가 대답해주지도 않는데, 나는 내게 묻고… 내게 스스로 답한다. 어쩌면, 내가 항상 이야기하고 있는 내 속의 내가 또 하나의 인격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시간 전부터 나는 나와 이야기를 계속 해오고 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여기까지 살인고찰을 읽고, 이번 《공의 경계(上)》의 마지막 이야기 『통각잔류』를 읽을 수 있었다. 통각잔류의 이야기는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무통증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로 비정상적인 것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보는 시선과 살아온 경험이 달라서 이야기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게 『통각잔류』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였다.


 《공의 경계(上)》에서 가장 긴 싸움 장면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상당히 몰입하며 보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책을 통해서도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무통증과 강간부터 시작해서 살인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꽤 비극적인 요소가 있으면서도 가엾다는 요소를 함께 느끼게 한다. 아마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혹은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한 소녀의 비극에 많은 아픔을 느끼져 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만약 내게 저런 비틀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나도 수없이 살인을 하지 않았을까.


후지노는 너무 괴로워 숨도 쉴 수 없는 몸에게 명령한다,

여기에 있으면 떨어져. 떠나지 않으면 안 돼, 하고.

타는 듯한 몸을 이끌고 주차장에서 탈출했다.

쇼핑몰은 비교적 무사햇다.

네모난 통로가 지금은 마름모가 되엇다.

후지노는 걷고 또 걸을 생각이었으나 쓰러졌다.

호흡을 할 수 없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멍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은, 그렇다――몸 속의 격렬한 통증뿐이었다.

죽는구나, 처음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아픈 걸. 이런 아픔은 참을 수 없어. 이 아픔을 안고 살아가느니 죽는 편이 나아.

"――우욱."

쓰러지면서 후지노는 피를 토했다.

땅바닥에 쓰러진 채 멍하니 있는다.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바닥에 흐르는 자신의 피만이 선명했다.

빨간 피――빨간 풍경.

노을이 불타는 것처럼――언제나 빨갛게 불타는 것처럼.

"싫어……. 죽고 싶지, 않아."

후지노는 팔을 뻗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팔로 기어나갈 수밖에 없다.

기어서 조금씩 앞으로 향한다.

그러게 하지 않으면――그 죽음의 신이 분명 자신을 쫓아올 것이다.

후지노는 열심히 기어갔다.

감각은 모두 통각.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런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손에 넣은 감각인데, 지금은 이렇게도 밉다.

그러나――정말이다. 아파서――너무 아파서 죽고 싶지 않다고 갈망한다.

이대로 사라지는 것은 싫다. 더 살아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어.

그런 건 너무 비참하다.

그런 건 너무 허무하다.

……그런 건 너무 슬프다. (p280)


 2013년 7월에 나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오늘은 날지 못했을 뿐이야.'라고 말해야 할까. 땅바닥에 떨어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몸으로 느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저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죽으면, 오늘 주문해놓은 라이트 노벨도 읽지 못하고… 내일 방영하는 애니메이션도 보지 못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음을 부정했다. 평소에는 그처럼 '그냥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더는 세상에 남고 싶지 않아.'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들이 한 번에 뒤섞였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열심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병원에서 누워있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했다. 과거 그 어떤 아픔보다 순간적인 아픔이 가장 컸던 그 시간. 그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나는 아픔을 느끼면서 참고 있다. 아니,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아픔을 느끼게 할지도 모를 상처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또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공의 경계(上)》의 마지막 이야기 『통각잔류』였다. 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번 《공의 경계(上)》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많은 시간 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글에 적은 이야기는 그 대화의 기록이다. 다른 사람의 감상 후기와 비교한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글이지만, 그냥 이렇게 썼다. 이게 나의 《공의 경계(上)》 감상 후기이다.


 여기서 글을 마친다. 살아간다는 건 곧 삶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곱씹고, 상처에 아파하고, 타인을 증오하고, 날고 싶은 갈망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감상을 할 수 있었던 《공의 경계(上)》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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