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에이티식스 6권 후기 연합왕국편 완결
- 문화/라이트 노벨
- 2023. 2. 12. 09:47
지난 2019년 11월을 맞아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5권>이 발매된 이후 한동안 라이트 노벨 신간 발매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애니메이션 <86 에이티식스>를 보았다. 애니메이션 <86 에이티식스>는 이세계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세계물이 아닌 이야기로 읽는 재미가 있는 이야기를 정교하게 그리면서 많은 극찬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내에서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를 정식 발매하고 있는 노블엔진 측이 왜 후속권을 발매하지 않는 건지 대단히 의문을 가졌다. 일본에서는 2021년을 기준으로 10권까지 정식 발매되어 있었기 때문에 후속권이 발매되지 않은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라노벨 독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마침내 오는 2023년 1월을 맞아서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6권>이 노블엔진을 통해 약 4년 만에 정식 발매되었다. 당연히 다른 작품보다 우선해서 읽을 생각으로 6권을 구매했지만, 오랜만에 읽는 <86 에이티식스 6권>은 앞의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아 잠시 5권 후기를 읽어본 이후 재차 책을 펼쳐서 열심히 머리를 쓰면서 읽었다.
머리를 쓰면서 읽은 이유는 <86 에이티식스>라는 작품은 다른 흔해 빠진 이세계물 혹은 러브 코미디 작품과 달리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86 에이티식스 6권>은 지난 5권에서 펼쳐진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비정한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에이티식스가 고민에 빠진 모습이 그려졌다.
그 고민은 단순히 우리가 '오늘 점심은 뭐 먹지?'라는 고민도 아니고, 러브 코미디의 주인공이 '오늘 데이트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도 아니다. 이번 <86 에이티식스 6권>에서 그려진 에이티식스의 고민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동안 공화국의 86구에서 쓰고 버려지는 절망이 당연했던 그들은 삶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렸다.
신에게 다소 뒤진다고 해도 오랫동안 86구의 전장을 살아남은 자의 눈.
냉철한 눈.
"너, 정말로 괜찮은 거야?"
"……."
신은 시선을 내려서 그 눈을 피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괜찮지 않다.
목표로 할 미래를, 바라야 할 것을 모르겠다. 몇 번 생각해도 자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 공허함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르겠다.
죽음을 향해 직진하듯이 살면 안 된다고 알면서도, 바로 곁에 있는 죽음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직시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미래를 바라지 않는 구실로 삼고 있었다.
게다가 여태까지는 잘 다스릴 수 있었던 전투 중의 정신 상태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전투 중이라면 다 잊어버릴 수 있었던 고뇌에 발목을 잡혔다.
지금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문제가 없다고― 더는 말할 수 없다. (본문 138)
에이티식스 멤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과 그 일행이 공화국에서 받은 정찰 임무를 통해 연방에 도착했을 때도 그들은 과거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선택지 앞에서 고민했다. 싸우는 것 외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매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화국의 86구에 있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은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싸움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86 에이티식스 6권>을 읽어 본다면 자기 자신으로서 싸우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게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신과 레나가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신이 자신이 애써 모르는 척해왔던 것을 마주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살고 싶은 이유를 찾는 장면이 <86 에이티식스 6권>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신과 레나 두 사람의 갈등 속에서는 레나 또한 자신 혼자 착각하고 있던 신의 모습이 아니라 신의 진짜 모습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신은 계속해서 싸우는 강함을 가졌던 게 아니다.
계속해서 싸운다는 긍지를 버팀목으로 삼고,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은 긍지에 매달려서― 필사적으로 살려고 했을 뿐이다.
상처 입지 않는 게 아니라, 아픔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픈 줄 모르게 되었을 뿐이고.
이제 긍지 말고는 스스로를 지탱해 줄 것이 하나도 없을 뿐이고. 그런 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다. 짐을 지울 수는 없다.
"나도 당신을 두고 가지 않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반드시. 데려가 주세요. 전쟁이 끝나고, 본 적 없는 바다를 보러."
보탬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의지해주기를 바랐으니까.
자신만큼은 결코 그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절대로 그를 놔두고 죽지 않는다. (본문 245)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전문가가 결국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도 많은 사람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앞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어도 어떤 선택지를 선택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언제나 남을 기준으로 남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택하거나 남들이 하니까 하는 이유로 같은 선택지를 선택한다. 그렇다 보니 살다 보면 삶에 대한 후회가 짙어질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낙을 삶의 방식에서 찾지 못해 알코올에 의존한다. 과연 그런 삶을 우리는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평범히 살아가면서 그런 고민을 하는 우리와 달리 <86 에이티식스 6권>에서 읽어볼 수 있는 신과 다른 에이티식스들은 애초에 '싸우다 죽는 것' 외에 어떤 선택지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연방에서 보호를 받은 이후 계속해서 고민했고, 공화국의 86구를 나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지난 <86 에이티식스 5권>에서 자신들처럼 쓰고 버려지는 '시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싸움을 통해 외면하고 있었던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특히, 다른 누구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아 에이티식스를 이끌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신은 더 그랬다. 신의 고뇌가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6권>에서 아주 잘 그려졌다.
약속했다.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하자고. 상처를 준 것도 사과하지 않았는데, 이런 데서 죽을 수는 없다.
죽고 싶지 않다.
더는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그게 아니라 그녀가,
――웃기를 바란다.
그 생각은 갑자기,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전투부터 여태까지 계속 메우지 못하고 있던 공허에 채워졌다.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 바꾸어야 한다. 하지나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뭘 목표로 하면 좋을까. 그렇게 물어보기만 하고 초조해하면서 채우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른다. 목포로 해야 할 미래도, 행복도, 아직 신은 그려내지 못한다.
그래도 하다못해.
레나가 웃어 줄 만한 삶을 살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께 웃으면서. (본문 309)
그리고 신은 마침내 그 답을 찾으면서 연합왕국에서 준비한 용아대산 공략 작전을 성곡적으로 달성하게 된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러스트는 <86 에이티식스 6권>의 표지에서 그려진 일러스트이자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신과 레나가 만난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흑백 일러스트다. 옅게 웃는 신과 활짝 웃는 레나의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6권>은 신과 레나, 에이티식스가 품은 고민과 함께 '무자비한 여왕'이라는 이름의 레기온을 상대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는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았다고 해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소 러브 코미디와 가벼운 이세계 판타지에 익숙한 사람들은 상당히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형태를 고뇌하는 이야기가 그려진 <86 에이티식스>를 읽다 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특히, 신과 레나와 에이티식스가 가진 고민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는 화려하고 빠르게 나간 싸움도 글로 읽다 보면 꽤 힘들 수도 있다.
그러니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를 구매해서 읽고자 한다면 한 번에 책을 읽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책의 세계에 빠져들 준비를 하고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도무지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애니메이션 2기 제작을 기다리도록 하자. 평소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작품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이트 노벨로 <86 에이티식스>를 읽고자 한다면 나는 응원을 해주고 싶다. 책이 읽는 일이 힘들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책을 읽다 보면 결국은 나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와, 진짜 좋았다…."라며 감탄하는 동시에 신과 레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여러 고민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꼭 그 광경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는 2월을 맞아 라이트 노벨 <86 에이티식스 7권>이 발매되었기 때문에 나는 7권도 미리 주문을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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