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8권 후기
- 문화/라이트 노벨
- 2019. 1. 20. 13:20
1월 신작 라이트 노벨로 만난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은 표지부터 대단히 눈이 가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표지를 장식한 인물은 성스러운 ‘프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요염한 분위기를 아낌없이 자아내는 검의 처녀. 그리고 그녀의 등에서 그녀를 지키는 듯한 고블린 슬레이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휘파람을 부는 것도 잠시, 본격적으로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쉽지 않은 일을 연속으로 부딪히는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 이야기에 잠시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할 말이 없어진 게 아니라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진 거다.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의 메인 사건은 검의 처녀가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에게 의뢰한 왕도까지 가는 길의 호위다. 왕도로 가는 길에 고블린이 출몰해 습격하고 있어, 검의 처녀는 다른 모험가가 아니라 고블린 슬레이어를 찾아 직접 의뢰를 한 거다. 검의 처녀가 고블린 슬레이어를 만나는 장면은 이렇다.
“와버렸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정도로 열기가 담긴, 흘러내릴 것 같은 목소리다.
창문으로 내리쬐는 아침 해를 등지고, 외투 안에서 보이는 입술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여자가 천천히 외투를 걷어 올리자, 안쪽에서 바다처럼 파도치는 금발이 흘러 내렸다.
지모신도 이러라 싶을 정도로 풍만한 몸의 선을 아낌없이 그려내는 하얗고 얇은 옷.
의복에서 엿보이는 피부는 전혀 햇살에 타지 않아서 하얀색을 넘어서 투명하다.
때문에 그녀의 볼이 장밋빛으로 빛나듯 보이는 것은 햇빛을 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창부로 이러랴 싶을 — 성창을 두는 신전도 있지만 — 모습.
남자라면 시선을 주기만 해도 녹아버릴 그녀의 눈동자. 그러나 검은 띠에 덮여있었다.
손에는 거꾸로 세운 검과 천칭을 조합한, 정의와 공정의 상징인 천칭검.
그것에 매달리듯 몸을 움직이는 그녀는 어쩐지 불안한 듯 가녀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폐가, 되었나요?”
“아니.”
검츼 처녀. 그렇게 불리는 변경 제일의 성직자에게, 고블린 슬레이어는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햇다.
“고블린인가?” (본문 68)
이 장면을 읽으면서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문장 한 줄, 한 줄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저자의 묘사. 이런 묘사를 익히기 위해서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 쓰고, 몇 번이나 상상하며 문장을 적어야 했을지 섣불리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쓴웃음)
<고블린 슬레이어 8권> 표지 일러스트만 아니라 내부 일러스트도 검의 처녀의 모습이 대단히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은 꼭 라이트 노벨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을 직접 구매해서 눈으로 보기를 바란다. 다음에 <고블린 슬레이어> 일러스트집이 나오면 무조건 지를 것 같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일러스트 집 이야기는 뒤로하고, 다시 라이트 노벨 <고블린 슬레이어 8권> 이야기로 돌아가자.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은 검의 처녀가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에 의뢰한 호위를 고블린 슬레이어가 수락하며 이야기의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호위 의뢰는 겨우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호위를 하는 동안 검의 처녀 마차를 습격한 고블린들은 몸에 수상쩍은 문신을 한 고블린이었다. 오늘날 한국처럼 타투가 유행해 고블린 사이에서 인싸 아이템으로 등극한 것도 아닌데, 고블린이 알 수 없는 문신을 하고 있다는 건 배후에 불길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뜻했다. 그 불길한 존재가 진짜 적이다.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은 왕도까지 무사히 검의 처녀를 호위한 이후 왕도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붐비는 왕도의 분위기에 취한 엘프 궁수는 말할 필요도 없고, 모두 각자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며 겪는 에피소드는 또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고블린 슬레이어의 경우는 더.
<고블린 슬레이어 8권>에서 그려지는 고블린 슬레이어가 혼자 끌어안고 있는 고민을 드워프와 리자드맨에게 털어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고블린 슬레이어는 언제나 혼자 고민을 끌어안은 채, 덤덤히 “고블린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한 명의 평범한 인간이었다.
고블린 슬레이어의 이런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에 <고블린 슬레이어 8권>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몇 인물의 모습은 더 부각되기도 했다. 아마 <고블린 슬레이어>의 저자 카규 쿠모는 이 모든 걸 고려해 이야기를 집필한 게 아닌가 싶다. 역시 작가는 대단한 인물이다.
<고블린 슬레이어 8권>에서 펼쳐지는 메인 사건은 왕도의 제1왕녀가 고블린에게 납치당한 사건이다. 그 왕녀를 구하기 위해서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이 ‘죽음의 미궁’으로 불리는 곳으로 향한다.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가 바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러스트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미궁에 도전하는 여신관도 있었지만, ‘죽음의 미궁’은 원체 난이도가 높은 미궁이었다. 미궁 4층 아래로 향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검의 처녀가 말할 정도다. 과거 마신과 싸웠던 미궁의 핵에 도달하는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번 고블린 슬레이어 이야기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죽음의 미궁 4층 재앙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고블린 무리를 통솔하는 고블린은 그동안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이 만나지 못한 고블린. 바로, 고블린 프리스트다. 고블린 프리스트는 여신관이 사용하는 ‘프로텍트’와 같은 기적도 행사하며 상당히 힘이 들게 하고, 악착같은 집념은 또 커다란 재앙을 일으킨다.
그 재앙을 간신히 이겨내는 장면은 침을 꼴깍 삼킨 상태로 책을 읽어야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고블린 슬레이어 일행을 도와주는 검의 처녀가 이끄는 군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건이다 정리된 후에 비로소 ‘하아, 드디어 끝났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다. 참, 여러모로 지쳤다.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은 그 정도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거운 분위기의 이야기가 지배한다. 하지만 이야기 끝에는 모두의 밝은 미소가 번지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고블린 슬레이어 8권>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읽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테니.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