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색의 고리, 긴장감을 풀 수 없었던 재심 미스터리
- 문화/라이트 노벨
- 2018. 5. 9. 07:30
[라이트 노벨 감상 후기] 죄색의 고리, 일당 400만 엔으로 진행되는 3일 간의 재심
라이트 노벨을 읽다 보면 단순한 모에 혹은 판타지, 배틀 장르가 아니라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여러 작품이 떠오르지만,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은 지금의 <어서 오세요 실력 지상주의 교실에>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어서 오세요 실력 지상주의 교실에> 시리즈는 꾸준히 연재가 되면서 라이트 노벨이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애니메이션화를 통해서 코믹스도 덩달아 판매 부수가 오르는 호재를 누리고 있다. 작가의 일정치 못한 연재로 인해 조기 종영을 하듯 사라져 버린 <하느님의 메모장>과 사뭇 다른 전개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 중에서 <F랭크의 폭군>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우와! 대박!!’ 이라고 말할 정도로 놀라면서 읽었는데, <F랭크의 폭군> 시리즈는 1권과 2권이 발매된 이후 다음 시리즈 발매는 감감무소식이다. 오래전 연재가 멈춘 작품이 한국에 정식 발매가 된 건 드문 일이다.
그만큼 <F랭크의 폭군> 시리즈는 결말은 상상할 수 있지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전혀 상상할 수 없어 읽는 재미가 장난 아니었다. <F랭크 폭군 2권>도 다음에 이어질 전개를 독자가 지나치게 기대하도록 한 상태에서 끝나 ‘2권’에서 연재가 멈춰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오늘 문득 라이트 노벨에서 미스터리 장르로 성공한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오늘 읽은 <죄색의 고리>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 작품 또한 ‘미스터리’ 장르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자리에 모아서 이미 이루어진 판결에 대해 ‘재심’을 벌이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처음 <죄색의 고리>을 읽었을 때부터 흥미가 무척 샘솟았다. <죄색의 고리> 이야기는 주인공 오토와 소이치가 재판에서 연쇄 살인에 대한 판결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장면에서 주인공 오토와 소이치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범인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인인 척’ 했다고 주장한다.
재판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보통 피의자의 의견은 거들떠보지 않는 법이다. 왜냐하면, 피의자가 하는 주장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은 오로지 ‘체포된 피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후 ‘체포된 피의자의 처벌’에 관심을 가질 뿐이기 때문이다. 피의자가 유죄이든 무죄이든 썩 흥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하는 피의자는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도 뉴스룸을 통해서 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조작 때문에 징역을 살고 나와 천신만고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일에 화를 내기는 해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원래 인간이라는 건 그런 생물이다. <죄색의 고리> 오토와 소이치는 자신의 무죄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걸 꺼리는 검사가 혀를 차며 “자기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라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 상상한 대로의 비극이 지금 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증언대를 세게 두들기면서 오토와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알고 계십니까. 제 아버지는 일을 관두고, 여동생은 왕따를 당해서 전학가게 됐습니다. 집에는 뚜껑 열린 페인트 통이 던져지고, 장난전화는 끊이질 않고, 방화사건까지 일어난 탓에 아직 주택대출도 남아있는데 야반도주처럼 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작 판결도 나지 않았는데, 살인범이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다들 성급하게 저지르잖습니까! 누구나 저를 처벌하려고, 그게 정의라고 믿으면서, 사실 재미 반인 주제에, 관계없는 가족의 인생까지 아무렇지 않게 쳐부수다니!”
그의 가느다란 목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저릿저릿 떨리는 게 느껴졌다. (본문 24)
나는 <죄색의 고리>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국회를 볼모로 잡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몇 야당이 똥고집을 부리며 주장하는 드리킹 특검 주장이 떠올랐다. 아직 판결도 나지 않는 데다 명확한 증거와 인과관계가 없는 데도 그들은 마치 죄를 확정한 것처럼 저지르고 있다. 선거를 앞둔 검은 의도를 숨긴 채.
주인공 오토와 소이치는 딱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오토와 소이치는 유죄가 될 뻔한 자신의 판결을 스스로 강하게 변호하며 증거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덕분에 그는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아직 본론도 시작하지 않은 <죄색의 고리>의 도입부였다.
겨우 도입부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인데, 본격적인 이야기에서는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다루어질지 무척 기대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렇게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어 가슴이 고무된 건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더욱이 이야기 소재가 ‘죄와 벌’을 다루는 ‘재심’이라는 게 한층 더 깊이 이야기에 빠지게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건은 여섯 명의 사람이 한 섬에 모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여섯 명은 미야코 사토리, 켄자니, 야노시마, 나루토, 히로세 와카나, 그리고 주인공 오토와 소이치였다. 이 여섯 명은 일당 400만 엔을 받을 수 있는 재심을 위한 재판관이 되어 무죄와 유죄를 다시금 판결해야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나간 사건의 재심을 하는 것으로 일당 400만 엔을 받고, 4일 동안 총 1600만 엔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행운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심을 내려야 하는 사건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공기는 일순 바뀌어버렸다. 섬에 모인 인물들은 각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거다.
가해자라고 말하더라도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죄인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무죄 판결에 저항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재심의 주최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일당 40 0만 엔’이라는 미끼를 이용해서 갈등을 일으키고, 과거의 사건에 얽매인 ‘증오’를 세게 부추겼다.
주인공 오토와 소이치는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지는 재심에서 모두 ‘무죄’의 입장에 서서 변론을 펼쳤다. 오토와 소이치의 주장을 따라가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놀라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주인공이 겪었던 ‘연쇄 살인범 누명’에 대한 놀라운 비밀이 밝혀진다.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죄색의 고리> 중간 시점부터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지만, 도무지 중간 과정을 쉽게 상상할 수 없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야기 마지막 결말을 읽으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읽은 작품이었다.
‘죄와 벌’을 소재로 다루는 만큼, 우리가 죄와 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도 제공하고 있다. 혹 이 글을 통해 라이트 노벨 <죄색의 고리>에 끌린다면, 꼭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죄색의 고리>는 단편이기에 더욱 읽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나는 별 다섯 개 만점 중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 이 작품은 서울문화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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