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경계(중), 가람의 동과 모순나선의 이야기
- 문화/라이트 노벨
- 2014. 1. 29. 08:00
[라이트 노벨 감상 후기] 공의 경계(중), 가람의 동과 모순나선의 이야기
지난번에 《공의 경계(상)》을 읽고,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읽게 된 《공의 경계(중)》이다. 이번 《공의 경계(중)》에서는 가람의 동 사건과 모순나선 사건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는데, 어느 이야기도 모두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아,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그냥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라고 말하기보다 조금 깊게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재미이다. 《공의 경계》라는 작품이 그저 웃기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그런 소설이기 때문이다.
공의 경계(중), ⓒ미우
· 가람의 동
제일 먼저 읽을 수 있었던 '가람의 동'은 시키가 병원에서 깨어나는 이야기이다. 과거 살인고찰(전)에서 쓰러진 시키가 비로소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죽음과 인접해있던 시키는 그동안의 가수면 영향으로 상대방의 '죽음'을 볼 수 있는 직사의 마안을 가지게 되었다. 이 직사의 마안은 상대방의 죽음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하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라도 '죽음'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 죽음은 선과 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을 베어버리거나 찌르게 되면, 어떤 것이라도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이든, 시체든, 건물이든, 이능력이든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애니메이션 《나루토》에서 볼 수 있는 사륜안과 윤회안보다 더 절대적인 파괴력을 가진 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지고 싶은 눈이다.)
아무튼, 이번 '가람의 동' 사건편에서는 병원에서 시키의 육체를 노리는 썩은 영혼을 가진 망자를 베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토코와의 이야기를 통해 시키는 완전히 시키인 채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코쿠토와 재회하며 이번 '가람의 동' 이야기는 그 막을 내린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술사.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목적이 없다고? 그것도 비참하지만 말이야, 너는 아직 착각하고 있다."
평온한 시키의 모습.
그것을 미워하듯이 마술사는 말했다.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는 거야. 이 행복한 인간아, 그 이상의 미래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냐."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술사는 혀를 찼다.
진심으로 우러난 말을 하는 자신의 미숙함 때문에.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인데. (p70)
· 모순나선
'가람의 동' 이야기는 짧게 끝을 맺었지만, 그 뒤로 정말 오랜 시간동안 글을 읽어야만 했던 '모순나선'의 이야기는 상당히 무거운 느낌이 있었던 이야기였다. 아마 '사색을 하며 책을 읽는다'는 표현을 이때에 사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뭐,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기에 다른 사람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읽을 수 있었던 '모순나선'의 이야기는 '통각잔류'보다 조금 더 사람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긴 이야기였음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조금 지루함을 직면하기도 했었지만….)
'모순나선'은 우리 인간이 어떤 욕망과 순수한 애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가족을 살해한 엔조 토모에라는 인물에 대한 정체, 근원에 도달하기를 염원하며 인간을 싫어하는 마술사 아리야 소렌. 그리고 그들이 억제력과 욕구에 휩싸였을 때 펼쳐지는 그 이야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숨죽이면서 읽어볼 수 있었다. 비록 내용이 조금 어렵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짧은 글로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나의 미숙함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으로 《공의 경계(중)》까지 마침내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마지막 한 권, 《공의 경계(하)》에서는 '망각녹음' 이야기와 '살인고찰(후)' 이야기가 남아있다. 더욱이 2014년 2월에는 신작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공의 경계, 미래복음》편이 방영된다니, 애니메이션도 정말 기다려진다. 언제 (하)편을 읽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감상 후기에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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