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걸까
- 일상/일상 이야기
- 2013. 11. 26. 08:00
어쩌면 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가메하메파를 쏜다거나 마법 같은 이능력을 사용한다거나 화려한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허무한 바람을 가져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현실은 현실'이라며 똑바로 현실을 바라본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은 '어릴 때나 보는 것'이라는 시선이 생겨버렸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통해 유년의 시절을 회상해보거나 취미 생활로 즐기고 있다.
내게 있어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취미 생활이나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회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래, 마치 얼마 전에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이보나라는 캐릭터가 윤찬영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 '애니메이션은 내 숨인데, 애니메이션 없이는 숨도 못 쉬어. 우주에 있는 것 같단 말이야.'라고 마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이다. 애니메이션은 내게 단순히 웃음을 주는 취미 생활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특별한 존재다.
어릴 때, 그저 혼자 우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게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보여준 꿈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나가는 모습은 '이상' 그 자체였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사람들의 갈채를 받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사회 공부를 하며 만난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블로그를 통해 내 꿈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K-on!!
일부 사람들은 내가 애니메이션 때문에 지금 내가 놓여있는 상황을 자초한 바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교류를 하기보다 매번 혼자 틀어박혀 지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겪은 사람에 대한 악감정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장시간 동안 있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화근을 애니메이션에서 찾아서 '너는 애니메이션에 미쳐서 겨우 그따위로 살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든 살아올 수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애니메이션은 내게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가르쳐줬고.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웃음을 준 아주 특별한 존재다. 혼자 몇 시간 동안 울고 있을 때 웃을 수 있도록 말을 건네준 것도 애니메이션이었고, 많은 책을 읽으며 꿈을 설계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애니메이션이었다. 또한, 블로그를 시작하여 조금이나마 사람과 소통을 하며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 애니메이션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지나치게 애니메이션에 대해 의존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유치한 애니메이션 따위에서 철학이나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 어떤 철학이나 의미가 있다는 건 애니메이션 평론가들은 잘 알고 있다. 아니, 딱히 애니메이션 평론가만이 아니라 문화·시사 칼럼니스트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과 사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미우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이라는 책은 우리가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인문학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 기회 또한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만남이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러 애니메이션 중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그 애니메이션이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에서는 이러한 보통 사람들의 꿈,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이들의 삶을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만의 욕망과 꿈에 사로잡혀 있는데, 거기에 사실 '돈'이나 '소비'의 문제가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원피스'에서는 그러한 현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그것에 대한 극복도 다루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에 담겨있는 건 그러한 현대의 '물질적 요소들'이 제거된 어떤 순수한 정신적 상태, 핵심, 정수들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고고한 정신 속에서 흔들림도 없이 자기만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에게는 생활의 어려움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가장 문제시되는 건 바로 생활이다. 현대인의 생활에는 늘 소비, 돈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조여들어오고, 그 차원은 타인과의 비교, 질투, 열등감이 얽혀있다.
현대인들의 삶은 거의 남들과의 비교와 질투에 의해 규정된다. 매번 유행하는 소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 하면, 뒤쳐지고, 경멸당한다는 느낌 속에 괴로워한다. 나보다 더 높은 소비생활 수준을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그들을 생각하며 절망을 느낀다. 동기동창들, 이웃들, 친척들은 진정한 동료일 때보다 비교의 대상일 때가 더 많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 물들수록, 현실 속에 살아갈수록 그러한 '비교의식'은 더 심해진다. 그 비교의 중심에 바로 소비 즉 '소비수준'이 있다. (p76)
아마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해 마냥 유치하다고만 생각하면서 드라마와 영화만을 가치 있게 평가한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에서 읽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를 읽으며 애니메이션이 마냥 유치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일부 사람들은 '꿈을 좇는 것이 유치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꿈이 없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더 가엾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으며 애니메이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는 정말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직도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어 남들이 다 가는 평범한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릴 때부터 정말 동경했던 '주변 사람들이 만드는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남아 내가 이 지독한 세상에서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있으니까.
ⓒ빙과
분명히 내 인생은 지금까지도 장밋빛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장밋빛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을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남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삶을 산다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고 싶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주변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 때문에 '바보'라는 말을 들어도, '사회 부적응자'라는 말을 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이 길에는 나의 꿈과 비전이 있으니까.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야 하는 건 바로 지금까지 추구해온 가치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이 어리석은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계속… 해서…. 길은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난 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가장 혹독한 굶주림과 고통,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이들을 살려내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상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상상이 없는 의지는 어디로 향해야할지 모르는 배의 동력원과 같다. 인간은 상상에 의지할 때 가장 강력한 생명의 원천을 얻는다. 우리의 삶은 상상으로 인해 부풀어 오르고, 생동감이 넘치게 되고, 힘을 얻으며, 미래를 향할 수 있게 된다.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상상을 한다면, 우리들은 인생을 통해 상상할 수 잇다.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주어진 자질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어떤 청년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대체로 어떤 직업적인 목표를 이야기할 것이다. 많은 이들의 꿈은 결코 삶에 대해 구체적이지 않다. 그들은 거의 반평생을 애매한 미래 속에만 묻혀 살아간다. 미래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직장을 얻고 싶고, 가정을 얻고 싶다고만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나 미래에 사로잡혀 현재를 노예로 만들면서. 정작 그 미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바가 없다.
현재로부터, 이 세상으로부터 어떤 가능성들을 상상할 것인가? 또 미래에 대한 어떤 가능성들을 꿈꿀 것인가? 구체적이지 않은 상상은 작품이 될 수 없다. 남들과 다 똑같은, 그저 그런 인생 역시 작품이 될 수 없다. 단지 현실의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가장 어울리는 삶, 내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삶, 또 나는 무엇과 함께 할 때, 어떤 모습일 때, 무엇을 할 때, 어떤 사람과 함께일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시도해봐야 한다. 그럴 때 상상은 실천과, 현재와, 미래와 연계되며 더 풍부해지고, 구체적이 되고, 나아가 실현 가능한 것이 된다.
많은 돈을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아파트에 살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으로 충분한가?과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미래인가? 상상력의 죽음은 곧 삶의 죽음과 같다. 진정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용기와 의지가 생길 수 있다. 미야자카 하야오라는 한 애니메이션 감독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상상의 가능성을 귀띔해준다. (p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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