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 제로, 정의를 꿈꾼 에미야 키리츠쿠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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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제로, 정의를 꿈꾼 에미야 키리츠쿠의 고뇌


페이트 제로(Fate Zero)


 이번 분기의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 페이트 제로가 드디어 완결이 났다. 이 페이트 제로는 소설이 원작으로서, 이미 그 결말은 베드엔딩(Bad Ending)이라는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 아마 왠만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베드엔딩으로 결말이 잘 나지 않지만, 이 페이트 제로(Fate Zero)는 베드엔딩이었다.


 그럼에도 이 애니메이션 페이트 제로가 정말 인기를 끌 수가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간략히 이유 두 가지를 말하자면, 하나는 원작을 제대로 잘 살리면서 내용이 아주 탄탄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화가 아주 뛰어났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번 페이트 제로를 보면서 실망을 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고, 시청한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만족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페이트 제로'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인지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잠시 간략하게 페이트 제로가 어떤 애니메이션인지를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페이트 제로는 몇 명의 마술사들이 서번트들을 소환하여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줄 수 있는 원망기 '성배'라는 것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이 싸움을 '성배전쟁'이라고 칭한다. 이 성배를 두고 싸우는 마술사들을 '마스터'라고 하며, 그들 마스터는 각각 한 명의 서번트를 휘하에 두고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그 전투에서 모든 마스터들을 쓰러뜨리고, 성배를 손에 넣는 사람이 성배전쟁의 승리자가 된다.


 마스터들이 소환할 수 있는 서번트들은 아쳐, 세이버, 랜서, 라이더, 캐스터, 버서커, 어쌔신 이 일곱 종류의 서번트로서, 어떤 영웅이 각 클래스를 가지고 서번트로 소환이 되는지는 마스터가 가진 영유물과 마스터의 성격과 관련되어 소환이 된다. 그래서 어떤 영유물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서번트를 소환하는지가 성배전쟁의 가장 큰 히든카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영유물이 없다면 마스터의 성격과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소환됨.)



페이트 제로(Fate Zero)


 위 이야기는 페이트 제로의 배경이자 페이트 제로를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번 페이트 제로에서 다루는 것은 정의를 꿈꾼 에미야 키리츠쿠의 고뇌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세상이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엇이 정의라고 생각하는가?


 이 같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후기에서 하는 것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으나, 바로 위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키리츠쿠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었으며, 그 질문으로부터 가져온 키리츠쿠의 답이 키리츠쿠를 괴롭히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페이트 제로라는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말이다.


 키리츠쿠가 성배전쟁에 참가한 이유는 성배를 이용하여 '다툼이 없는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번 성배전쟁을 인류가 흘리는 최후의 피로서 만들겠다고 하였으나 성배의 본질을 알게 된 그는 크게 낙담하여 버리고 만다. 성배는 결코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원망기가 아니였고, 키리츠쿠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60억의 인구를 위해서 성배를 파괴해버린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키리츠쿠가 생각하는 '다툼이 없는 이상세계'가 진짜 이상적인 세상이고, 정의가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아니 어떤 생물이 사는 세상에서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세계다. 그것은 모든 살아숨쉬는 생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특히 인간은 그 존재의의조차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세계관이다. 그렇기에 키리츠쿠는 고뇌를 마지막까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페이트 제로(Fate Zero)


 아마 키리츠쿠가 세이버(아서왕)을 서번트로 부리게 된 것은 영매의 역할도 있었지만, 그 같은 생각이 세이버(아서왕)과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간 자신이 '정의'라는 이유만으로 저질러온 일들을 용서받고 싶었고, 구제받고 싶었던 마음이 말이다. 아니, 애초에 이것은 소설의 설정상 작가가 아주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애니메이션 페이트 제로는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고 보았다면, 아주 화려한 액션씬과 각 전투들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추구해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그런 시각으로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의는 정의할 수는 없다. 단이 어느 정도의 옳고 그름이 분명할뿐이다. 하지만 그 또한 고민을 하자면,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페이트 제로는 그 같은 고민을 끝없이 하는 에미야 키리츠쿠라는 인간을 통해서 잘 보여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결코 '다툼'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나는 이 애니메이션 페이트 제로를 그래서 '명작'으로 손꼽고 싶다. 애니메이션보다도 원작을 읽는 것을 더 추천하고 싶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충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연결고리이자 하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그저 '명작이다.'라는 말만 할뿐이다. 


 이것으로 나 나름대로의 페이트 제로 종결 후기를 끝마치도록 하겠다. 그럼, 다음에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 후기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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